새를 만나는 시간, 갯벌에는 도요새가 온다
볍씨가 무르익은 논 밭이 황금 빛으로 물들고 있는 요즘이다. 여름날의 햇빛이 사그라지고 가을 바람이 분다는 것은 새덕들에게 장비를 챙기고 갯벌로 가야 하는 때임을 알려주는 신호다. 일 년 중 두 계절, 놓칠 수 없는 도요새들의 이동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갯벌에는 도요새들이 온다
놀기 좋은 모래사장의 동해와는 다르게 서해에는 갯벌이 있다. 질척거리는 땅. 과거 산업시대 때부터 갯벌은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져 왔지만 사실 갯벌은 셀 수 없이 많은 생명들이 살아가는 생태계의 거대한 보고다. 사람들의 밥상에도 올라오는 게, 낙지, 조개, 꼬막, 바다고기들을 비롯한 각종 해산물들을 품어주는 보금자리다.
갯벌이 선물하는 이 맛거리를 즐길 줄 아는 건 사람 뿐만이 아니다. 매년 봄, 가을이 되면 잔뜩 굶주린 여행자들이 서해 갯벌을 방문한다. 도요새들이다. 도요새들에게 갯벌은 그야말로 뷔페식당이나 다름없다. 사방에 깔려있는 게 밥이다.
한국 갯벌을 찾아오는 도요과 새들은 개체수가 10만을 넘으며 종수도 45종이나 된다. 손에 쥐면 터질 듯이 작고 앙증맞은 좀도요부터 큰 덩치와 곧게 뻗은 부리를 가진 알락꼬리마도요까지, 누가 누군지 알아보려면 공부해야 할 게 많으니 도감을 펼쳐보도록 하자. 크기와 색, 형태가 각기 제각각이다. 이 친구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이 도요새들은 모두 엄청난 마라토너들이라는 점이다.
큰 도요 작은 도요.. 각기 다른 형태의 모습을 가진 도요새들
필드스코프를 통해 본 마도요들
전 세계에는 크게 아홉 개의 철새이동경로가 있다. 그 중 우리나라가 포함되어 있는 경로는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East Asia Austrailian Flyway) 이다. 봄과 가을이 오면 새들은 이 경로들을 따라서 긴 이동을 시작한다. 직선 거리로만 약 12,000km. 바람과 자신에게 주어진 두 날개에 의존할 뿐, 7~9일 간 쉬지 않고 비행하는 험난한 일정이다. 고기반찬을 노리는 매의 공격이나 체력고갈로 인해 바다 한 가운데로 추락할 수도 있는 여러 위협들을 감수해야 한다. 힘겹더라도 목적지에 도달한 개체에게만 미래로 나아갈 자격이 주어지기에 그렇다.
Nine major migratory waterbird flyways largely based on Shorebirds © 2010 EAAFP
위성추적기로 밝혀낸 도요새들의 이동경로. 한국을 거쳐간다 ©EAAFP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도요들은 4~5월, 봄이 되면 극동지역인 러시아, 알래스카 같은 북쪽으로 이동한다. 그 곳에서 여름 동안 새끼를 길러낸다. 9~10월, 가을에는 반대로다. 겨울을 지내기 위해 다시 동남아시아, 호주 같은 남쪽으로 이동한다. 알래스카와 호주, 이 중간에 절묘히 놓여있는 곳이 우리나라다. 우리가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피곤하면 휴게소에 들르듯이, 새들도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런 새들에게 서해 갯벌은 최고의 휴게소, 중간 기착지다.
우리나라는 경기도의 강화도부터 남해안 까지 갯벌이 넓게 형성되어 있어 어디를 가든 어렵지 않게 도요새들을 찾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군산 금강하구는 최대 개체수가 집중되는 장소다. 10만이 넘는 도요새 무리가 떼지어 군무 하는 경이로움을 목격할 수도 있다. 필자도 일 년에 한 번은 꼭 찾는 곳이다.
아직 한번도 이 귀여우면서도 놀라운 녀석들을 보지 못 한 분들에게는 곧장 장비를 챙겨서 갯벌로 가라고 말하고 싶지만 입문자에게 도요 동정은 어려운 편에 속한다. 서로 생긴 게 비슷해서 그 놈이 그 놈 같은 데다가 크기도 조그만 것들이 바짝 모여있어서 눈이 어지럽다. 집중하고 봐도 어렵다. 마치 개미떼 같다. 어떻게 해야 도요새들을 자세히 볼 수 있을까?
도요 탐조 중인 새덕들
갯벌에서 휴식 중인 도요새들
비행 중인 도요새들
동정을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은 두 가지 경우다 . 장비가 좋은 것을(이라 쓰고 비싼 것이라 읽는다) 쓰거나, 또 하나는 가까이서 보는 것이다. 다행히 후자의 방법을 통해 도요들을 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사람만 보면 날아오르는 새들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물 때를 이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썰렁한 갯벌만 바라보다 올 건지 귀여운 도요새들을 보며 힐링을 받고 올 지는 오로지 물 때 시간에 달려있다.
바닷물이 빠지고 갯벌이 광활하게 드러나는 썰물 때는 도요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때문에 가까이서 보기가 힘들다. 반대로 물이 가득 차오르는 밀물 때는 도요들도 물을 따라 육지 쪽으로 밀려오게 된다. 해안가에서 얌전히 기다리기만 하면 알아서 도요새들이 와줄 것이다. 이 때 도요들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거리만 잘 지킨다면 도요들을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명심하자. 먼 이동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해야 하는 때인 만큼 도요들의 휴식을 방해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새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또한 여럿이 도요 탐조를 간다면 넓게 분산하지 말고 한 몸처럼 붙어 다니는 것도 팁이다. 새들의 불안감을 낮춰준다.
왼쪽: 세가각도요 가운데: 넓적부리도요 오른쪽: 민물도요
도요새들의 현실
도요 탐조를 갈 때면 사람들의 눈에 불을 켜게 하는 새가 있다. 넓적부리도요다. 전 세계 200쌍만이 남은 것으로 알려진 심각한 멸종위기 종이다. 15여 마리 이내 만이 한국 갯벌을 지나간다. 필자도 여태 까지 세 번밖에 만나 뵙지 못 했다. 수 만이 넘는 도요 무리 속에 눈 빠지도록 찾아야 한 마리 보일까 말까 이기 때문이다. 찾다 보면 모든 도요들 부리가 넓적해보이는 착시현상도 겪을 수 있다. 부리 끝에 흙을 묻히고 다니는 좀도요들은 얄밉기까지 하다.
넓적부리도요를 찾는 것이 어떤 건지 간접적으로 나마 체험해보자 ⓒJason Loghry
안타깝게도 앙큼한 티스푼 부리를 가진 이 넓적부리도요는 서식지 보존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6 ~ 8년 이내에 멸종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많은 연구가들이 넓적부리도요를 지키기 위해 그들의 생태를 연구하고 개체수 현황을 조사하며 힘 쓰고 있지만 미래는 밝지 못 한 실정이다. 개체수 감소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인 ‘갯벌 매립으로 인한 서식지 파괴’ 가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개체수 감소는 넓적부리도요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을 경유하는 대부분의 도요 종들의 개체수가 최근 10년 간 크게 감소했고 그 상황은 전혀 나아지고 있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를 찾는 도요새 개체 규모가 10만 정도인데 세계 최대 규모인 새만금 방조제가 들어서기 전 만해도 30만이 넘는 새들이 있었다. 방조제에 의해 해수 유통이 막히면서 갯벌은 죽었고 새들도 떠났다. 새만금은 넓적부리도요 200여 개체가 한 자리에서 관찰된 기록이 있을 정도로 소중한 중간기착지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시화호, 화옹호, 천수만 등 광대했던 갯벌들이 방조제와 둑에 갇혀 사라졌다. 현재도 크고 작은 공사들로 인해 갯벌의 면적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필자의 할머니네인 영종도에서도 준설토투기장 건설을 위해 갯벌을 매립 중이고 송도에서도 신도시 건설을 위해 습지보호구역인 고잔갯벌을 열심히 파묻고 있다. 안타깝게도 도요새들의 또 다른 서식지인 중국의 황해 갯벌과 태국 갯벌 또한 같은 사정 속에 있다. 오히려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북한의 갯벌이 도요새들의 안전한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고 있음이 최근 조사에 의해 밝혀졌다.
준설토투기장 건설으로 인해 영종도 갯벌이 매립되고 있다
새들의 존재는 우리의 환경의 건강을 나타내는 지표다. 그런 새들의 개체 수가 감소한다는 건 우리의 환경의 건강이 좋지 못 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새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경제 논리만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새들의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 된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는 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생태계의 기반이 되어주는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생태계 정점에 서있는 우리 스스로를 무너트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도요새에 관한 짧고 유익한 영상이다. 미국 코넬대학교 조류연구소에서 제작했다. 무려 한국어 버전.
201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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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때 시간표>
바다타임 - http://www.badatime.com/
국립해양조사원 - http://www.khoa.go.kr/kcom/cnt/selectContentsPage.do?cntId=31080000
바다타임, 국립해양조사원 사이트에 들어가면 수위를 확인할 수 있다. 밀물 때라도 수위가 낮은 날에는 도요새들을 가까이서 보기 힘들다. 수위가 높은 날에 찾아가야 한다. 달이 만월에 가까워질 수록 수위도 높다.
<도요새를 만날 수 있는 곳>
갯벌 어디를 가든 웬만하면 도요새는 있다. 인공위성 지도 보고 적당히 찾아가자
경기도 - 강화도, 안산만, 시화호, 남양만, 송도, 영종도
강원도 - 강릉 남대천 하구.
충청남도 - 가로림만,
전라북도 - 새만금, 금강하구, 유부도, 곰소만
전라남도 - 순천만, 남항갯벌
경상남도 - 남해 강진만, 을숙도 낙동강하구
참고문헌
EAAFP, "Protected areas", http://www.eaaflyway.net/internationally-protected-areas-may-2016-newsletter/, (2016.09.14)
새와 생명의 터, "새만금", http://www.birdskorea.or.kr/Habitats/Wetlands/Saemangeum/BK-HA-Saemangeum-03.shtml, (2016.09.14)
Birdlife Asia, "Reclamation", http://www.birdlife.org/asia/news/reclamation-yellow-sea-causing-serious-declines-migratory-shorebirds, (2016.09.14)
에코저널, "준설토투기장 건설", http://www.ecojournal.co.kr/news_view.html?code=02000000&uid=81436, (2016.09.14)
BBC, "Safe haven for birds", http://www.bbc.com/news/magazine-36533469, (2016.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