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자전거 여행 (1)
11월 2일 ~ 7일 제주도 자전거 여행.
첫 휴가다.
기간은 9박 10일. 어디론가 훌쩍 떠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24시간 사람들과 얽혀야 하는 부대 생활에 지쳤던 거 같다. 일주일에 하루 9시간 외출 시간이 주어지지만 솜사탕 같은 외출의 달콤함은 너무나 짧고 나는 자유를 느끼고 싶었다.
'자유'를 생각하니 자연스레 제주도가 떠올랐다. 들판을 거닐면서 제주도의 자연을 만끽하면 이 갑갑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 제주도다. 그럼 이왕 가는 김에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돌아보는 건 어떨까? 걸음보다는 빠르고 차에 비해서는 느리지만 제주도를 꼼꼼이 누리고 다닐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다.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곧 바로 일정을 계획했다. 다른 분들의 자전거 여행기를 보니 3박 4일이면 해안 도로를 따라 제주도 한 바퀴를 도는 게 가능하다고 한다. 제주공항에서 반 시계 방향으로 북, 서, 남, 동, 다시 북으로.
1. 그린데이게스트하우스에서 노을해안길게스트하우스 (북 → 서)
2. 노을해안길게스트하우스에서 나날게스트하우스 (서 → 남)
3. 나날게스트하우스에서 핫플게스트하우스 (남 → 동)
4. 핫플게스트하우스에서 시바게스트하우스 (제주공항 근처) (동 → 북)
4등분으로 쪼개 놓으니 하루에 이동할 거리가 60 ~ 70km 정도다.
이 정도라면 예전의 한강 자전거 여행 때 경험해봤다. 적어도 체력이 문제가 될 일은 없겠다.
자전거 여행은 자신의 체력과 날씨 같은 변수 때문에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한다.
비성수기 때는 빈 방도 많다. 그러나 내가 이 여행 팁을 알게 된 건 숙소 예약을 모두 마친 이후였다.
눈이 오건 비가 오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숙소에 도달해야 했다. 바보.
가장 큰 걱정은 날씨였다.
안 그래도 지난 번 밤샘 시위 관리를 하면서 감기에 걸린 상태였다. 예약을 했으니 제주도를 가기는 가야겠고..
11월로 접어들면서 일교차도 크고 해안 도로면 바람도 분명 강하게 불 터, 그래도 남쪽이니 서울보다는 따듯할 거라 믿었다.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믿을게 되지 못 할 뿐더러 기온이 적혀있어도 어느 정도 춥다는 건지 체감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역시 가장 좋은 건 현지인에게 물어보는 거다.
아는 분께 연락하니, 제주도도 서울이랑 다를 게 없이 아주 춥다 하더라. 해안 도로이니 각별히 챙겨 입고 오라는 당부의 말씀까지 들었다.
혹새 제주도 사람이 느끼는 체감과 서울 사람이 느끼는 체감이 다르지 않을까 잠시 생각도 해봤지만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는 직접 가서 맞아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혹시 모를 최악의 날씨를 대비하여 바리바리 옷가지들을 챙기는 수밖에.
한편으로는 먼 거리를 자전거로 이동하기 때문에 짐은 가능한 가볍게 챙겨야 했다.
딜레마다. 추울지 모르니 많은 옷들을 챙겨야 하는데, 옷을 많이 챙기니 늘어나는 무게가 부담된다.
타협에 타협을 거쳐 빼야 할 짐들을 빼고 챙겨야 할 짐들을 챙기니 약 8kg 정도가 되었다.
'뭐.. 이 정도면 괜찮겠지?'
가장 고민했던 짐은 카메라였다. 혼자 가는 여행이라 찍어줄 사람도 없고 찍혀줄 사람도 없다. 풍경 사진은 내게 의미 없다.
휴대폰으로도 충분하다. 새 사진은... 이제 망원렌즈가 없기 때문에 찍지도 못 한다. 근데도 카메라를 챙겨야 할까?
촬영 장비가 다른 모든 짐을 합친 무게보다 무겁다. 이거만 빼면 정말 날아다닐 지도 모른다.
그래도... 혹시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그런 풍경을 만나게 되진 않을까? 우연히 만난 사람을 찍어줄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욕심은 끝이 없다. 결국 챙겼다.
제주도에는 저녁에 도착했다.
<그린데이게스트하우스>에서 딱 잠만 자고
자전거 여행은 다음 날 아침부터 시작이다.
자전거 대여는 <보물섬 하이킹> 에서 했다. 여기는 자전거를 제주도 일주 도중에도 반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고 한다.
가격은 하루에 1만 3천원. 사장님이 추천하시는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선택했다. '노펑크' 자전거라고 하시니 도중에 길거리에 주저 않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문제는 내 배낭이었다. 그 커다란 배낭을 등에 매고 다니면 몸에 무리가 될테고, 뒷바퀴 짐받이에는 도저히 묶을 수가 없었다.
아.. 시작부터 꼬인다.
무리해서라도 등에 매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다행히 사장님께서 해결책을 주셨다.
짐받이에 부착 가능한 가방인 '패니어'를 빌리고 그 안에 짐을 옮겨 놓으면 문제 해결.
그렇게 가지고 왔던 배낭은 렌탈점에 맡기고 제주도 일주를 향해 내달릴 수 있었다.
아.. 근데 정말 덥더라.
안에는 히트텍을 껴입고 겉에는 바람막이까지 걸치고 달렸는데
오르막길 하나 오르자 마자 흠뻑 땀에 젖었다. 날씨는 쌀쌀한 가을 날씨 정도.
이대로 땀에 젖은 채로 달리면 감기가 악화될 위험이 컸기 때문에
근처 화장실에서 내복을 모조리 벗고 운동복과 바람막이만 남겼다. 그래도 더워.
자전거도 운동이다 보니 몸에서 열이 후끈후끈 올랐다.
나중에는 바람막이도 벗고 목토시와 운동복만 남겼다.
목만 목토시로 체온을 잘 유지해주고 다른 곳은 바람에 노출되어도 상관없었다.
제주도 해안의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어 딱 좋다.
결론적으로 추위를 걱정해서 가져왔던 내복들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짐을 훨씬 가볍게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한담해안산책로.
바로 옆에는 그 유명한 <봄날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사람들이 북적북적.
숙박 업소라기보다는 하나의 관광지더라.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들이다.
카메라를 가방에서 꺼내는 것은 생각보다도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었다.
카메라 왜 가져왔니...
일본 카레집 <문쏘>
나에게 선택장애가 있다는 걸 이번 여행을 통해서 깨달았다.
'도대체 어느 식당에 가야 할까'
인터넷에 검색해서 나오는 맛집은 해안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하필 휴업인 경우가 많았다.
그 외 일반 식당들은 다 거기서 거기라 특별히 차이점이 보이지 않는다.
분위기도 좋고 맛도 괜찮은 식당...
'계속 가다 보면 괜찮은 식당이 나오겠지'
그렇게 계속 달려 식당을 지나치고.. 지나치고.. 또 지나치고..
'괜찮은 식당'이 보이길 운에 맡기며 계속 달리다 보니
배만 곯을 뿐이었다.
내가 생각했을 때 '맛'과 '분위기'가 확실하게 보장되는 건 식당이 아닌 카페다.
그렇게 달리고 달리다 결국은 카페에 가서 달달한 간식과 주스나 스무디로 점심을 때우는 날이 대부분이었는데
첫날은 운이 좋게도 보는 순간 '여기다!' 하는 식당을 만날 수 있었다.
협재에서 만난 식당 <문쏘>
혼밥지정석이라니.
솔플 중인 나에게 안성맞춤인 곳으로 제대로 들어왔다.
매우 흡족.
<4차원 게스트하우스>
계속 가다 보니
예약을 할까 고민했던 게스트하우스들이 하나 둘 씩 보였다.
자전거 여행이 아니라 답사를 온 기분.
해안도로를 따라 제주도를 돌면서
다음 제주도 여행 때를 대비해서 길거리 숙소들을 눈여겨보고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을 이번 여행을 통해 얻어갔다.
최소한 지리 정보만큼은 확실하게 배웠다.
<쓰담쓰담 게스트하우스>
저번 제주도 조사 끝나고 홀로 여행을 떠났을 때 들렀던 카페 <파람>
싱계물공원.
저번에는 폭풍이 몰아치는 날씨 덕분에
혼자서 거닐었는데
오늘은 화창하니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용수저수지.
용수저수지 바로 앞에 있는 이 <제주모모>라는 게스트하우스는 숙박비가 무료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는데
바로 부모님께 편지를 쓰는 것이라고 한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머물러보고 싶은 곳.
잠을 자는 곳은 사진에 보이는 저 알록달록한 원통형 건물이다.
내가 머문 곳은 바로 이 곳 <노을해안길 게스트하우스> (만족)
시설도 깔끔하고 편안하다.
조용하고 한적한 휴식을 원하는 분이라면 이 곳을 추천한다.
숙소 바로 뒤 당산봉 바위절벽에는
수 십마리의 제비, 귀제비 떼가 비행하고 있었다.
숙소 주변으로는 일몰을 보기 좋다는 수월봉과
레져관광(?)을 할 수 있는 잠수함이 있다.
풍광이나 즐길까 해서 당산봉에 올랐지만 날씨는 흐릿.
숙소 앞 식당에 적혀있던 문구.
ㅋ....전역여행...
잠자리에 들기 전에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고
자전거 여행 1일차 소감을 메모장에 간단히 적어보았다.
무턱대고 자전거 여행 첫날 소감
무릎이 박.살난거 같다.
내일도 할 수 있을까?
고글 선글라스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바람 때문에 눈이 아프다)
양말 좀 넉넉하게 가져오지.
생각보다 덥다. 상하의 다 내복은 필요 없었다.
숙소는 미리 예약하지 말았어야 했다.
어쨌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