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조/2016년

제주 자전거 여행 (2)

김어진 2016. 11. 9. 14:03

 

 

 

 

 

11월 2일 ~ 7일  제주도 자전거 여행. 

 

 

 

 

 

노을해안길게스트하우스 (당산봉)  →  나날게스트하우스 (서귀포) 

 

 

2일차. 

 

"자전거 타시려고요? 휴가인데 편한 데서 쉬고 그러시지"

제주도 첫날 밤을 보냈던 <그린데이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한 아저씨가 내게 얘기했다.

"하하, 쉬러 온 겁니다" 

"흐.. 내일 타보시면 알 거에요" 

 

숙소를 먼저 떠나며 그가 남겼던 의미심장한 말에 담긴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침대에서 눈을 뜨자 알 수 있었다. 

전 날의 갑작스러운 대퇴근(허벅지) 사용량 증가로 생긴 다리의 피로가 찌릿찌릿 그대로 남아있었고 

원래 있었던 구내염은 더 커졌다. 어깨, 허리 온 몸이 쑤신다. 

이상하게 왼쪽 손목까지 아팠다. 자는 동안 손목이 꺾이면서 손목 시계 모서리에 짓눌렸던 모양이다. 

자고 나면 개운할 줄 알았는데 몸이 천근만근이다.

제주도 자전거 여행은 낭만과 자유가 아닌 강도 높은 운동이라는 걸 절감한 날이다. 

몸뚱이를 더 쉬게 하고 싶은데 벌써 다음 숙소를 향해 페달을 밟아야만 하다니.  

 

더군다나 둘째 날은 4박 5일의 일정 통틀어 길이 가장 험난한 구간이었다. 

산방산부터 서귀포까지가 끊임없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내리막길에서 맛볼 수 있는 속도감과 쾌감은 즐거우나 짧고 

곧 다시 오르막길을 마주해야 하는 사실은 끔찍했다. 

오르막길은 경사가 가파라서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야 할 때도 많았다.

다리에 자극이 오는 게 운동이 되는 것 같아 좋긴하다만...

 

기왕 길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더 말하자면 

자전거 길이라고 만들어 놓은 <제주환상자전거길>은 대단히도 형편없었다.

기존에 있는 길과 도로 바닥에 파란 선을 그어 놓고는 

'환상 자전거길' 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여 놓았을 뿐이다. 

별점을 주자면 5점 만점에 2점. 

 

도심권에 가까울 수록 길은 위험하기 짝이 없으며 불쾌하기 까지 하다. 

쭉 놓여져 있는 파란 선을 따라가다 보면 전봇대를 아슬아슬 비켜나갈 때가 많고 

길 위에 놓인 버스 정류장을 통과해야 할 때도 종종 있다. 어쩔 때는 갓길조차 없는 차도로 안내하기 까지 한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병원으로 장기휴가를 떠날 수도 있는 길이다.

제주공항에서 협재까지는 공사장도 많아서 

공사판과 차량들이 일으키는 먼지가 매캐하다. 

 

길은 외곽으로 나와야 좀 한적해진다. 

덴마크에서는 차도와 자전거 길을 확실하게 구분 지어 안전을 보장해주던데 

지형의 차이도 있겠지만 아직 한국에서 그 정도 수준까지는 바라기 힘든 듯 하다. 

 

보다 나은 자전거길을 위해

보완하고 개선해야 할 점을 보게 된다면 기록을 잘 해두었다가  

 

1 서귀포시>안전환경도시국>건설과

2 제주시>도시건설국>도시재생과 

 

이 두 곳에 건의사항을 올리도록 하자. 

 

 

 

 

 

 

와! 남방큰돌고래. 

대정읍 앞 바다에서 20-30개체 정도 되는 무리가 해안 가까이까지 유영을 한다. 

야생 돌고래를 제대로 보는 건 처음이다. 

 

사족이지만, 불법포획되어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쇼를 하다가 

제주도 바다로 돌아간 '제돌이' 가 바로 저 남방큰돌고래 이기도 하다. 

 

 

 

 

식사를 즐기시는 중인 매 

 

 

 

뜻밖의 동행이 생겼다. 

제주도민 지인 분에게 제주도 날씨를 여쭤보려고 연락을 드린 게 계기가 되어 

지인 분 아들인 경호와 이 날 하루만 함께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하필이면 길이 가장 힘든 구간이었다..) 

나이는 풋풋한 고1. 평소에 다리 운동을 틈틈이 해 놓았기를 바라며.. 

 

 

 

알뜨르비행장

이 곳의 넓은 들판에 서서 가벼이 바람을 쐴 때면 

세상에 홀로 남은 듯한 해방감을 짧게 나마 맛 볼 수 있어 

애정이 가는 장소 중 한 곳이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들판의 풀들을 사진 속의 육면체로 잘라 묶어버리는 작업을 

어르신들이 하고 계셔서 그냥 지나쳤다.  

아쉬움을 남겨야 다음에 또 찾을 때 재미가 있겠지. 

 

 

 

3년 전 삼촌과 함께 왔을 때 카트를 탔던 곳이 여기구나.

크. 이런 건 또 그냥 못 지나치는 성격이다. 

여행을 왔으면 즐길 건 즐겨줘야지. 

 

경호가 돈이 없다는 얘기를 꺼내자 사장님께서 1만원으로 깎아주셨다.

원래 가격은 2만 5천원... 안 깎았으면 억울할 뻔 했다. 

저번에는 신나게 탔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이상하게 재미는 없었던 걸로. 

 

 

 

 

점심은 용머리해안 근처의 <Km여사의 밥상> 에서 해결했다.

식당 뒤의 산방산과 앞에 펼쳐진 해안의 풍경 덕분에 분위기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이동 중에 지친 몸을 쉬었다 가기에는 참 좋았으나 

음... 돈까스의 맛은 아쉬웠던.. 고기가 얇고 하얀 소스(마요네즈?)가 있어 입에 맞지 않았다. 

경호가 시켰던 나가사끼 라면은 그나마 괜찮았다. 단순 메뉴 선택 실패의 문제.. ㅠㅠ 

 

 

 

 

 

 

빠르게 변해가는 제주의 모습.

 

 

 

 

 

 

 

 

이동시기에 은둔형 도요류가 많을 듯한 이 곳. 

 

 

 

내륙 쪽의 오르막 내리막길을 달리다 만난 해안도로가 반갑기 그지없다. 

 

 

 

선녀탕

 

 

 

 

 

외돌개

 

 

 

 

 

숙소에 짐을 맡기고 

외돌개에서 바라본 황혼은

현재 신분이 군인이라는 암울한 현실이 지워주듯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한 마음을 안겨주었다. 

아.. 좋다. 계속 이랬으면 바랄 게 없다. 

바위에 누워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경호는 한시라도 빨리 카페 같은 곳에서 쉬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미안. 지나치고 싶지 않은 풍경이라. 

 

 

 

 

 

"경호야 나 사진 한장만 찍어줘" 

 

여행을 혼자 다니면 가장 아쉬운 게 자기 사진을 담기가 어렵다는 거다. 

휴대폰 셀카가 확실한 방법이긴 하지만 한정된 구도와 낮은 화질로 만들어진 결과물은 만족스럽지 않다. 

다른 방법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삼각대를 설치해 스스로 타이머로 찍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근처의 사람에게 부탁하는 방법이다. 

 

전자의 경우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는 뻔뻔함만 있으면 만족스런 사진을 얻을 수도 있으나 

사진 한 장을 위해 무거운 장비들을 챙기고 다녀야 하는 수고를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후자의 경우는 모르는 사람과 접촉을 유도해주는, 여행자일 때만 즐길 수 있는 낭만이기도 하고

편하기도 하지만 만족스러운 사진을 얻을 확률이... 거의 제로다. 

세팅을 모두 맞추고 셔터만 누르면 되는 상태로 DLSR을 얹어줘도 

비싸고 어려워 보이는 장비가 자신의 손에 맡겨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난감해 하다가 

셔터 몇 번을 누르고는 "됐죠..?" 라며 왠지 안도한다. 

 

지나가던 사진가가 아닌 일반인에게 맡겨진 이상 대부분의 결과물은 흔들렸거나 

머리와 발까지만 딱 맞춰 나오는 와이드 앵글의 심심한 구도가 보통이다. 

 

경호에게도 DSLR로 부탁을 했다가 다시 휴대폰으로 부탁했다. 

화질은 포기해야겠지만 휴대폰은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장비니까.

이걸로 만족...

 

 

 

 

 

 

밤에는 좀 무섭네 이거. 

움직일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