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조/2016년

제주 자전거 여행 (4)

김어진 2017. 1. 29. 14:19

 

 

11월 2일 ~ 7일  제주도 자전거 여행. 

 

 

 

 

 

 

 

성산 <핫플게스트하우스> - 조천 <시바게스트하우스> 

 

다음 날 비행기 시간이 아침인 탓에 

숙소는 제주시에서 가까우면서도 외각에 위치한 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그렇게 지도를 훑다가 찾은 곳이 조천읍 해안가의 <시바게스트하우스>

내부 인테리어 사진을 보니 아늑하고 조용해 보여

예약했던 숙소 중 가장 기대가 컸다. 

 

날씨도 우중충한데 서둘러서 숙소를 향해 출발.

 

 

 

 

하도리. 

물닭, 홍머리오리만 바글바글

 

 

 

언제 봐도 이쁜 하도해안 

 

 

 

혹시 해가 지기 전에 숙소에 도착 못 하는 건 아닐까. 

걱정은 되었지만 기왕 온 김에 하도리 안 쪽까지 둘러보았다. 

아직 11월 초라서 종 수도 단조롭고 개체수도 적어보였다. 

 

좀 더 여유있게 예전에 시베리아흰두루미를 보았던 종달내륙까지 둘러볼까 하다가 

날씨가 어두운 게 어쩌면 비가 올 듯 하여 서둘러 떠났다. 

 

 

 

모래사장이 곱게 펼쳐진 해안이 많다. 

다음에는 꼭 여름에..! 

 

 

 

작년 제주도 조사 때 우연히 만난 부모님과 해물라면을 먹었던 곳..! 

 

 

 

예전에 삼촌과 머물렀던 곳. 내부 인터리어 공사 중이었다. 

추억이 새록새록. 

 

 

 

오늘은 반드시 맛집을 즐기겠다는 결심과 함께 

인기 관광지 월정리에 도착하자마자 맛집들을 검색했다. 

 

검색창에 1순위로 뜨는 <곱들락>.

 

"혼자세요?" 

 

들어가기도 전에 문 앞에 모여있던 직원들 중 한 남자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네" 

 

"아.. 근데 저희가 고깃집이라..." 

 

"아.. 여기 고깃집이에요? 인터넷에 성게알비빔밥 판다고 나와있던데.. " (머쓱) (긁적긁적) 

 

"네 고깃집이에요" 

 

젠장. 

 

 

 

그 다음 검색 2순위로 뜨는 옥상 식당 <노리터>

식당이 맞나 싶은 비주얼이다. 

아름다운 월정해안이 펼쳐지는 전망을 기대하며 올랐건만 

문이 잠겼다. 휴업이랜다. 

 

 

 

 

마지막 3위.. 여기도 잠겼다. 

ㅠㅠ 배롱개 너마저 휴업이라니.

오늘도 쭉쭉 달려야겠다.

 

 

 

김녕항 근처 어느 골목길 안 쪽에 있던 카페 <노랑대문> 

배가 허기져 간식이라도 먹으려고 들어갔다. 

 

 

 

사람이 없어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가 

쉬기에 더없이 좋았다. 

블루베리 스무디도 짱짱. 

 

 

 

주린 배 쥐고 쭉쭉 달려가다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함덕서우봉해변의 이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대문짝만하게 쉐프의 경력에 대해 소개해놓은 자신만만한 광고가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든든한 쌀밥 한 끼가 그리웠지만 

요리를 기가 막히게 잘 한다고 하니 먹어볼 수 밖에. 

 

 

 

 

아..땀 식는다.

맛도 좋고 풍경도 좋은데 추워..  

 

 

 

 

<시바게스트하우스> (Sea bar 임)

아늑함과 고요함 그 자체. 바다가 펼쳐지는 창가에 앉아 문장을 음미하며 

편안히 책만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최적인 분위기를 갖춘 공간이었다. 

4일 연속 자전거를 타면서 그새 실력이 늘어난 건지

도중에 하도리 철새도래지까지 한 바퀴 둘러보고 왔는데도 

예상보다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하고 말았다. 오후 2시를 조금 넘겼을 때였다. 

 

'지금 시간엔 체크인이 안 될텐데? 어쩌지?' 

시간이 남아도는 관계로 일단 짐이라도 맡기고자 인사를 하며 들어갔다. 

 

"거 이름이..?"

'형님' 또는 '보스' 소리 들으며 살았을 법한 장한 체격의 백발 어르신이 문을 열고 나오며 물었다. 

왠지 사람들과 동떨어진 깊은 산골짜기에 살며 외지인에게 까칠한 산장지기 같은 느낌이 뿜어졌다. 

 

"김어진 입니다"

 

"아..! 아..! 난 또.. 이름 보고 여자인 줄 알았더니.." 

주인장 어르신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실망스러움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꼬추 달린 놈이라 미안합니다'

 

"지금은 체크인이 안 되는데 왜 이리 빨리 왔습니까?"

신발을 다 벗기도 채 전에 주인장 어르신이 물었다. 

 

"아 예, 제가 자전거로 여행 중인데 달리다 보니 예상보다 일찍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일단 짐만 맡길 수 있을까요?"

 

"짐은 여기다 두세요. 이쪽이 방이고.." 

 

처음 들어왔을 때 실내는 빈집 마냥 불도 켜져있지 않았다. 거실에는 실제 bar처럼 바테이블이 한 가운데 놓여있었다. 하필 날씨가 을씨년스러워서 마치 인류종말 이후 버려진 술집에 들어온 듯도 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몇 쯤 돌아오면 되겠습니까?"

"5시부터 입실입니다"

최소한 5시까지 근처 어디선가 뻐팅겨야 한다는 소리.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 여기 아침 나옵니까?"

문 밖으로 나서기 전 주인장 어르신께 마지막으로 물어봤다. 

"안 나옵니다. 아니, 예약하면서 그런 거 다 안 보고 합니까? 체크인 시간도 모르질 않나..."

한심하다는 듯, 신경질이 섞인 말투로 주인장이 대답했다. 

이름을 들은 순간부터 못 마땅하다는 얼굴을 일관하고 있었는데 질문을 듣고는 참고 있던 게 폭발한 듯 보였다.

 

'그런 정보들이 있었나..?' 

 

마지막 날이기에 세탁이나 식사제공 여부는 주든 말든 상관없어서 사진만 보고 숙소가 마음에 들어 골랐을 뿐이다. 

게다가 직접 와서 물어보면 안 될 건 뭐람? 그렇게 까칠하게 구실 필요가 있나? 흥칫쳇 뿡. 

순간 욱하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 같아선 짐 싸들고 옆의 <아프리카게스트하우스>로 옮길까 하는 생각도 스쳤지만

숨을 골랐다. 참기로 했다.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곳이 주는 아늑함이 마음에 들었다. 이러면 내가 을이다. 

 

"그럼 5시까지 오겠습니다"

 

한참 동안 다시 왔던 길로 가다가 폰을 꺼내어 확인해봤는데

역시, 아침제공 여부에 대한 정보 같은 건 없었다. 

 

 

 

 

바람과 파도가 어마 무시했던 함덕서우봉해변. 

 

 

 

헤안을 거닐며 산책. 

유명 관광지인지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어디서 시간을 때울 수 있을까 하다가 발견한 조천읍 도서관! 

정말이지 완벽하다. 

 

 

 

꿀잼ㅋ 

 

 

 

언젠가 가봐야 할 곳들이군. 

 

 

 

<아프리카게스트하우스>.

<핫플게스트하우스>처럼 투숙객들이 같은 놀자형 숙소.

<시바게스트하우스> 바로 옆에 있다.

 

 

 

밤산책 길

 

 

 

 

 

저녁을 뭘로 먹을까 하다가 찾은 <무거버거> 

 

 

 

냠냠

 

 

여행의 재미와 가치는 새로운 것을 만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는 알지 못 했던 새로운 자신을 만나보는 성찰도 있겠고 
풍경이나 음식도 그렇다. 
그 중에서 가장 풍족한 경험을 남겨주지만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 있는데
'사람'이 그렇다. 
 
다른 여행기 책들을 읽다 보면 여행 중 만난 낯선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함께 밤을 지새어 놀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동행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여행 횟수가 많지 않은 탓도 있지만 성격이 내향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나에게는 
이런 일은 한없이 낭만적인 일로만 느껴진다. 현실감이 없다. 
실제로 여행 중에... 뭐랄까 소비자로서 판매자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있어도
사람 대 사람으로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본 경험이 없다. 
 
그런 이유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핫플 게스트하우스>도 가본 거였지만 
고기와 술을 기반으로 열 댓명이 왁자지껄 모여 떠드는 분위기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정신 없더라. 
나는 '왁자지껄' 보다는 '도란도란' 쪽이다. 
그런데 생판 모르는 남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여행 중' 이라는 공통점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랑.
한번 쯤 꼭 경험하고 싶은 만남이었지만 좀 처럼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무거버거로 입을 즐겁게 해준 뒤 숙소로 돌아와 잠에 들기 전 아늑하고 폭신한 침대에 앉아 권성민 PD의 에세이집 <살아갑니다>를 읽던 중이었다. "딸랑~ 딸랑~"문에 걸린 종이 울렸다. 이미 잘 시간인데 새로운 사람이 온 모양이었다. 들어보니 예약을 한 사람은 아니고 지나가다가 그냥 괜찮아 보여 들어왔다는 거 같다. "짐은 여기다 두시고... 방은 이 쪽입니다"주인장 어르신이 안내를 마치고 나에게도 그러했 듯 호기심을 가지고 신상조사에 들어갔다. 
"선생님은 무슨 일을 하십니까?"


"아 예 방송국에서 일합니다"귀가 쫑긋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30대 초반의 남성이 미소 지으며 얘기 중이었다. (파자학교 선생님을 닮으심..)
"아 그래요~? 여기 이 친구는 자연다큐멘터리 찍는 게 꿈이라던데 둘이 얘기 한 번 나누면 좋겠네요" 어르신 만세..! 주인장 어르신의 주선 덕분에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없는 고요한 방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러 분야에 대한 얘기를 도란도란 나눴다. 의경이라는 소개를 하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현 시국에 대한 얘기부터 어쩌다 보니 미래 진로에 대한 고민상담까지. 

취업 정보는 맨날 만나는 친구들보다 어쩌다 한 두 번 보는 사이인 사람들에게서 얻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더니 과연 사실인가 보다. 

 

(마지막 날 아침)

 

긴 얘기를 나누고 

다음 날 아침, 좋은 모습으로 언젠가 만나자는 인사말과 함께 

그와 헤어졌다. 

아직 군복무가 1년이 남았기 때문에 앞으로 진로가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인사말대로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날 날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여행 중에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도 값질 것이라고 

그 동안 경험은 못 하고 어렴풋이 짐작만 해왔는데 

과연 그랬다. :) 

 

 

 

 

 

 

 

그럼 다음 휴가 때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