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스쿠터 여행5

2017. 7. 26. 16:13탐조/2017년



제주도 스쿠터 여행5



(보리게스트하우스 조식)



다섯 째날 여섯 째 날은 미리 계획을 짜놓은 것이 없었다. 송당리 주변에는 가볼만한 곳이 많았기에 유동적으로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동선을 짤 때는 항상 고려하던 것이 맛집과 목적지의 거리, 방향, 주유소 등이었다. 그러나 여행을 5일 동안 하면서 고려해야할 요소가 단 하나로 바뀌었다. 날씨다. 다섯 째날 제주도에는 어김없이 폭염주의보가 내렸다. 우리는 12~ 3시 사이의 햇빛만큼은 피해야한다는 걸 피부로 배웠기에 오전에는 시원한 숲에 있다가 점심 때는 동굴에라도 들어가기로 했다. 우선 첫 번째 목적지는 송당리에서 가까운 비자림숲으로 정했다.

비자림숲 입구에는 실망스럽게도 대형 주차장(그늘 없음)과 함께 전시관인지 청소년수련원인지 모를 건물이 세워져있었다. 주차장은 관광객들의 자동차와 대형버스로 가득했다. 여기도 그냥 대규모 관광객을 위한 관광지 중 한 곳일까? 매표소 너머로 보이는 길도 그늘 없는 아스팔트길이었다. 내가 기대한 건 이런 아스팔트 정원이 아닌데.. 다른 곳으로 가야하나. 그러나 구글에 비자림숲을 검색해서 나오는 이미지는 온통 울창한 숲들뿐이었기에 속는 셈치고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기로 했다.

스쿠터는 주차장 구석 그늘 아래에 세워두었다. 근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스쿠터가 작은 탓에 짐을 트렁크 안에 보관할 수가 없었다. 선택을 해야 했다. 이 땡볕에 저 큰 가방을 메고 돌아다니던가 아니면 여기 사람들의 시민의식을 믿던가. 사실 이 문제는 여행 첫 날부터 겪어왔다. 맨 처음에는 불안해서 짐들을 다 챙기고 다녔다. 그러나 매번 가방을 끈으로 묶고 푸는 과정도 번거롭고 이 무거운 걸 폭염 속에서 챙기고 다니는 건 자학행위라는 걸 경험한 이후로는 카메라만 빼고 모두 스쿠터에 그대로 묶어놓고 다녔다. 경험상 해외였으면 바로 도난당했을 텐데 다행히 우리 짐들이 사라지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역시 이런 점은 우리나라가 좋긴 좋다.

비자림숲은 매표소에서 500m 정도까지는 그늘 하나 없는 (극혐) 아스팔트길이었지만 다행히도 그 이후부터는 흙길이 나타났다. 사방이 나무로 뒤덮여있고 하늘마저 나뭇잎들로 가려지는 울창한 숲이었다.

.. 대박이다

나무 하나 하나가 모두 굵직한 몸매를 자랑하며 지나온 세월의 두께를 그대로 드러냈다. 이런 고령의 거목들로 가득한 숲이라니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감탄과 함께 저절로 든다. 길은 사람들이 편하게 탐방할 수 있도록 깔끔하게 정리 되어있었다. 비자림숲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를 알 거 같다. 비자림숲을 한 바퀴 걷고 나니 입장료가 너무 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옆에 길을 걷던 한 아주머니는 이렇게 까지도 말하셨다.

절물휴양림은 좀 인위적이고 너무 꾸며놓은 티가 나는데 여긴 그런 게 하나도 없네~ 여기가 훨씬 좋다” 







새덕이라면 여름에 제주도에 온 이상 반드시(?) 보고 가야하는 새들이 있다. 천연기념물인 긴꼬리딱새와 팔색조 이 두 종이다. 희귀종이라 알려져 있지만 남부 지방에서는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게 보이기 때문에 시간 들여 찾아볼만 하다. 더더욱 비자림숲 같이 이런 울창한 숲에 왔으니 긴꼬리딱새나 팔색조가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충분히 가져도 될 법했다. 숲 입구에서 100m 정도 걸었을 때였다. 풀 숲 어디선가 연속적으로 뾰롱뾰롱뾰롱뾰롱 하고 우는 새소리가 들렸다. , 긴꼬리딱새다. 여윽시 제주도다. 가만히 서서 잠시 기다리자 이름 그대로 기다란 꼬리를 가진 긴꼬리딱새 수컷이 20m 정도 떨어진 나뭇가지 위에 나타났다. 외관이 아름답고 희귀종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많은 새덕들과 사진사들이 보고 싶어 하는 새다. 긴꼬리딱새를 보는 건 이번이 세 번째이지만 저렇게 온전하게 기다란 꼬리를 가진 수컷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필드스코프가 없어서 자세히 못 들여다 본 게 아쉬웠다. 수컷은 곧 자리를 박차고 날아올라 이리저리 자리를 바꿔가며 뾰롱뾰롱 울음소리를 뽐냈다. 좀 더 길을 걷자 암컷도 보이고 여러 마리의 긴꼬리딱새 울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여기서는 정말 흔케인가 보다. 직박구리가 우는 것처럼 멈추지 않고 지저귄다. 20분 정도 더 걸었을 때는 이제 그만 좀 들렸으면 하는 바람이 들 정도로 질렸다.

비자림 숲 한 바퀴를 모두 돌고 콘트리트로 도배되어있는 입구 부분에 다다랐을 때였다. 어디선가 긴꼬리딱새 소리가 들려왔다. 숲 안쪽이라면 모를까 사람도 많고 인공시설물도 많은 왜 이곳에서 소리가 들리는 걸까.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쉬지 않고 울어댔다. 두 마리의 소리가 들렸는데 하나는 긴꼬리딱새의 소리가 맞고 다른 하나는 딱 들어보니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녹음파일 소리였다.

누가 여기서 플레이백을..?’

소리가 들리는 곳을 보니 어린 아이들이 우루루 모여있고 인솔자로 보이는 어른 몇 명이 보였다. 그 중 한명이 휴대폰으로 긴꼬리딱새 소리를 틀고 있었다. 뭐 하는 사람들인가 명찰을 보니 이곳 청소년수련원 생태해설사인가 뭔가 하는 사람들이었다. 소리 틀던 50대 후반(?) 생태해설사분은 긴꼬리딱새가 앞에 날아오자 이렇게 설명을 하셨다.

보세요! 보세요! 저기! 지금 저 새는 굉장히 불안한 상태에요. 자기 영역에 다른 새가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거거든요

그러면서 녹음 재생을 멈추지 않았다. 녹음 소리를 틀면 새가 불안해 한다는 설명까지는 좋았다. 근데 그러면 새들을 위해 딱 한 번만 틀 테니 잘 보라 던지 소리를 틀면 편하게 볼 수 있지만 새들이 불안해하니 새들을 보려면 기다려야 한다는 걸 가르쳐줘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었다. 오로지 시각적으로 흥미로운 대상으로만 여길 뿐 같은 생명으로 존중하는 느낌이 전혀 없없다. 내가 강사였으면 저렇게 안 하겠다.

 


다음 목적지는 만장굴로 정했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동굴에 들어가면 좀 시원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는 계산이 깔려있었다. 초등학생 때 한 번 와봤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무튼 와본 적은 있는 거 같지만 남아있는 기억이 하나도 없다. 사실상 처음 와보는 거라 해도 무방하다. 이 곳 주차장에도 관광객들의 자동차와 대형버스로 가득했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더 많았던 거 같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여럿 보였다.

군인 할인을 받고 들어간 만장굴 내부의 온도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었었다. 무지무지하게 춥다.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왕복 2km에 달하는 동굴 안 탐방로를 그저 빠르게 다녀왔다.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는 안경에 서리가 껴서 앞이 완전히 안 보였다.

땅 아래에 이렇게 크고 기다란 원형 동굴이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는 했어도 크게 흥미가 가지는 않았다. 나는 지질 쪽하고는 영 아닌가 보다



햇볕이 가장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잔인해질 수 있는 정오... 우리는 하루 종일 토굴 생활을 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없이 만장굴에서 나와 이동을 해야 했다. 드라이브 말고는 특별히 할 게 없었다. 이제 남은 일정은 오로지 드라이브뿐이었다.

그 전에 점심은 맛집이 많기로 유명한 월정리 해변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우리가 고른 식당은 <곱들락>. 누누이 말하지만 햇볕이 살인적이었기에 주변에 어떤 식당이 있는지 돌아다닐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냥 아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곱들락>은 저번 자전거 여행 때 성게알비빔밥 파는 곳이라고 잘 못 알고 들어갔다가 고깃집이라고 해서 다시 나갔던 곳이다. 오늘은 친구와 같이 왔기에 들어가서 12,000원 점심 정식을 시켰다. 반찬이 다양하고 고기도 깔끔하니 괜찮았다. 맛집이라고 할 정도의 특별한 건 없었지만 만족스러운 한 끼였다



친구놈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빨리 출발하자고 내게 재촉했다. 불쾌지수가 오를 대로 오른 듯이 보였다. 그러나 월정리는 밥만 먹고 바로 떠나기에는 볼거리가 나름 많은 관광지였다. 마음 같아선 좀 걸어 다니면서 마을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친구는 이 미친 듯이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는 그런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쉽지만 바로 앞에 보이는 특이한 빵집에 들어가서 빵 하나만 고르고 나왔다. 친구는 그 사이 먼저 출발했다. 아니 먼저 출발하는 걸 봤다. 나는 그보다 조금 뒤늦게 출발했다. 가다보면 만나겠지. 월정리를 지나서 쭉 달리고 있는데 아무리 달려도 친구놈이 보이지 않았다. 일단 연락을 한 번 해봐야겠는데 도로 위에서는 뜨거워서 못 하겠고 그늘에서 해야 했다. 그러나 해안도로에서는 아무리 달려 봐도 그늘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뒤돌아가지도, 멈추지도 못 하고 앞으로 가다가 신재생에너지홍보관이라는 이상한 건물까지 가서야 그늘을 찾을 수 있었다.

여보세요?”

, 야 어디냐?”

월정리

거기서 뭐해? 아까 출발한 거 아냐?”

너 기다리고 있었지. 기다리면서 여기 해변에 래쉬가드 누님들도 보고... 와 진짜 래쉬가드가..”

정말이지 답이 없는 친구다. 



친구놈을 다시 만난 후 부터는 해안도로를 따라 성산으로 이동했다. 중간에 하도리철새도래지에 들렸지만 새는 없고 햇볕만 뜨거워서 앞에 있는 하도해변에 들렀다. 옷이 젖든 말든 너무 더워서 그냥 바닷물에 들어갈까 생각했지만 귀찮아질 거 같아서 그러지 않기로 했다. 바지를 걷고 발만 잠깐 담궜다



!! 들어가기 전에 발 여기다 씻고 가는 거 안 보여?!”

화장실, 샤워실 입구를 지키던 어느 할머니가 역정을 내며 앞에 놓여있는 대야를 가리켰다. 대야 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갔음을 유추하게 해주는 흙탕물이 고여있었다. 그러면서 이곳을 쓰려면 자신에게 돈을 줘야 한다고 했다. 여기 공공시설물인데 이 할머니가 무슨 자격으로 돈을 걷는 걸까? 이 할머니가 이 시설을 손수 지었을까? 돈을 보탰을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내뱉는 무례한 언사와 태도 때문에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지만 샤워실은 2000원을 내야하고 돈 안 낼거면 화장실에서 닦아야한다는 졸라게 친절한 할머니의 안내에 따라 얌전히 발만 닦고 나갔다. 흙탕물 가득한 화장실 바닥을 맨발로 찝찝하게 걸으며 세면대에 발 올리고 닦았다. 일반인 신분이었다면 무슨 자격으로 돈을 받느냐고 따졌겠지만 의경이라 그럴 수 없었다. 사람들과 다툼이 일어나면 무조건 내가 불리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 싸움에 조그만 연루되기만 해도 징계를 받기 때문이다





날은 너무 더웠고 우리의 갈증은 심해져갔다. 스쿠터 안에 넣어둔 물은 따끈하게 데워졌고 이미 다 마신지 오래었다. 제발 일단 카페부터 가자는 친구놈의 말에 따라 성산일출봉 앞에 있는 어느 카페를 가기로 했다. 겨울철새 조사때 가본 적 있는 카페다. 기와집 형태의 한옥카페인데 앞에 전망이 좋다. 시원한 바다 풍경 바라보며 스무디 한 잔 할 생각으로 열심히 밟았는데 도착하고 보니 더 이상 운영 중인 카페가 아니었다. 문 닫았더라.






성산에서부터는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다는 금백조로를 통해 송당리로 이동했다. 앞으로 쭉 펼쳐진 도로가 서부 영화에서나 볼 법한 길이었다. 아쉬운 점은 유명한 도로라서 그런지 차가 너무 많았고 2차선이었기 때문에 길이 좁아 스쿠터가 다니기에는 위험했다그냥 옆에 용눈이오름으로 연결되는 도로로 이동할 껄 하는 아쉬움까지 들었다





오늘 우리가 머무는 곳은 어제와 같은 송당리이지만 숙소를 <써니허니게스트하우스>로 옮겼다. <보리게스트하우스>에서 고작 500m 정도 밖에 안 떨어진 곳이지만 최대한 다양한 곳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 날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마침 일이 있어서 게스트하우스에 안 계신다 하셨고 다른 손님들도 없어서 게스트하우스에는 오로지 친구놈과 나 둘 뿐이었다.

숙소에 도착한 우리 둘은 짐만 내려놓고 바로 노을을 보러 용눈이오름으로 갔다. 어제는 친구놈이 식당에 가자고 해서 밥 먹느라 노을을 못 봤지만 오늘은 노을 먼저 보고 식당에 가겠다고 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용눈이오름에는 바람이 힘차게 불고 있어 시원했다. 오름 정상에는 노을을 보러 온 사람들이 이미 여러 명 올라와있었다.

단지 노을을 보기 위해 온전히 시간을 내보는 게 참 오랜만이다. 퇴근길 또는 하교길에서,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빌딩들 사이로 잠깐 잠깐 창문으로 내비치는 주홍빛 햇살을 보는 게 전부였는데, 해가 지평선을 넘어가면서 시시각각 다채롭게 변하는 구름의 모든 색을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여행에서나 즐길 수 있는 여유인 듯하다.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봐도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있어서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담느라 정신없었다. 물론 풍경 사진 말고도 이런 풍경을 배경으로 서있는 내 사진도 남기고 싶은데 부탁할 놈이 친구놈 밖에 없다. 카메라 설정은 내가 맞춰놓고 넌 셔터만 눌러라 식으로 부탁한다. 그러면 친구놈은 일부러 초점을 안 맞추거나 얼굴만 사진 모서리에 빼꼼 나오게 찍으며 내 반응을 즐긴다. 대충이든 정성스럽게든 어쨌든 찍어준 건 고맙지만 마음에 드는 결과물은 한 장도 없다. 친구놈의 사진 실력이 안 좋은 건지 그냥 사진 속 피사체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저녁은 송당리의 <앞오름돼지촌>에서 6000원짜리 무난한 된장찌개와 무난한 국수로 해결했다


(폭염주의보... 너무나 뜨거웠습니다



친구놈은 방에 남아 노래방 어플로 열창을 하셨고 나는 혼자 산책을 나갔다. 시원한 밤공기 마시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좋은 방법이다.

시골이라 그런지 밤시간의 마을은 조용했다. 저벅 저벅 걷는 내 발걸음 소리와 풀벌레 소리만이 있을 뿐이었다. 고요했다. 텅 비어있는 도로에는 지나가는 자동차도 없었다. 좀 뭐랄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는 주변이 조용한 게 좋긴 하지만 마을이 지나치게 조용했다. 양 옆으로 길가에 건물들도 많은데 아무리 밤 시간이라 해도 거리에 나밖에 없는 게 어쩐지 스산했다.

적막하게 걷던 중 무엇인가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잡종 진돗개였다. 목줄도 없고 덩치도 컸다. 녀석은 이리저리 킁킁 거리면서 나에게는 관심 없다는 듯이 걸어 다녔다. 나도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향해 걸었다. 그리곤 다시 뒤를 돌아봤는데 어째 아까보다 좀 가까워졌다. 몸의 방향은 나를 가리키고 있는데 고개를 다른 곳으로 트는 걸 보니 일부러 딴청을 피우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힐끔힐끔 녀석을 훔쳐봤다. 역시나 그 개는 따라오는 듯 아닌 듯하면서 슬금슬금 거리를 좁혀왔다. 아까는 저 멀리에 있었는데 잠깐 안 본 사이 내 뒤에 붙어있었다. 왈왈 요란하게 짖는 것들은 그냥 무시하면 안전하지만 저렇게 순한 표정을 유지하면서 조용히 따라오는 애들이 진짜 무섭다. 사람을 물 거 같지는 않지만 최악의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 걸음을 멈추고 우뚝 서서 녀석을 뒤돌아봤다. 그러자 녀석도 걸음을 멈추었다. 내가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있자 녀석은 몇 번 더 눈치를 살피더니 자신이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괜히 사람 쫄리게 만들어..;;

근데 이 개만 있는 게 아니라 어느 집 입구에도 백구 한 마리가 줄 없이 엎드리고 있었고 쓰레기장에도 개 한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왜 이렇게 개들이 많은 걸까.

 

http://www.hankookilbo.com/v/7d50c22cd97741da8cf95841f5fe3081




http://www.jejusori.net/?mod=news&act=articleView&idxno=193954



(구글에서 이미지 퍼와다가 포토샵으로 만든 이미지 입니다)


가로등이 더 이상 없는 마을 끝 부분에 도달했을 때였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려고 뒤돌아섰는데 앞에 있는 사거리 직진 방향에 키 큰 누군가 서있었는게 보였다. 나를 정면으로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털이 쭈뼛 섰다. 사람이 맞긴 한데 뭔가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형상이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이 풍성하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듯 하는 걸 보면 여자 같은데 키가 180에서 185정도 되어 보였다. 나보다 높았다. 확실하지는 않다. 가로등을 등지고 있어서 온통 시커멓게 보여서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오로지 실루엣 뿐이었다. 옷은 식상한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천 원피스로 보였다. 신발은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바닥이 어두워서 발은 못 봤지만 발목과 다리가 길쭉하게 천 아래로 나와 있는 것이 주변 색과 대조되어 선명하게 보였다. 두 팔은 호날두 프리킥 자세 마냥 양 옆으로 살짝 벌려져 있었다.

나는 귀신이라는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흔히 귀신이라고 부르는 건 정신적인 이유에서나 아니면 뇌에서 시각정보를 담당하는 부분이 다치면서 생기는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환상이 보이면 진짜 무섭겠지.. 악몽처럼) 인류의 역사 속에서 죽은 사람이 몇 명인데 특정 몇 명만 귀신이 된다는 건 말이 안 되고 사람만 귀신이 되고 동물이나 식물은 귀신이 안 되는 건 너무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고 귀신의 몸 안에 세포들과 장기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며 장에 똥들이 그대로 있을지 의문이다. 어쨌든 귀신이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저건 무조건 사람일 수밖에 없을 텐데 아무리 봐도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형상이 이상했다. 사람이 저렇게 기괴한 모습으로 가만히 서있을 일이 뭐가 있을까?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서있는 건 휴식을 취하는 새들이나 하는 짓이지 사람은 다리 아프고 지루해서 그러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온다. 도대체 어떤 미친사람이 몰래카메라를 찍는 것도 아니고 야밤에 저러고 있냐고. 뭘까 저건. ‘모르겠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심장이 쿵쾅 쿵쾅 뛰기 시작했다.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지만 만약 저게 나에게 달려들 영화 같은 경우를 대비해서 주먹을 꽉 쥐었다.

정체모를 그건 사거리에서 50m 정도 더 뒤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숙소로 가려면 저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야 했다. 그러니까 사거리를 동서남북으로 치면 그건 북에 있었고 난 남에서 서로 가야했다. 1분 가까이 사거리를 지나가는 동안 그건 말 그대로 손가락 까닥 않고 우두커니 가만히 서서 나를 바라봤다. 아무리 빛이 어두워서 제대로 볼 수 없다 해도 윤곽만 보면 얼굴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건 정확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안 보였을 뿐이지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뭔데 진짜. 평소였다면 궁금한 건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마인드로 가까이 갔을 텐데, 본능이라고 하면 좀 유치한 표현일까? 가까이 가선 안 된다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스스로에게 멍청한 짓은 하지 말자고 되뇌며 애써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었다.

신경이 바짝 곤두선 상태로 숙소까지 남은 길을 걸어갔다. 이제 그 것은 내 뒤에 있으므로 혹시나 내가 앞을 보고 걷는 사이 탁탁탁탁 달려오는 건 아닐까.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주변을 살폈다. 눈 감고 샴푸로 머리 감는 동안 앞에 귀신이 와있으면 어쩌나 했던 어렸을 적 상상과 비슷했다. 너무 긴장한 탓에 바짝 마른 나뭇잎이 바스락 굴러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 비명을 질렀다. 아무도 안 봐서 다행이었다.

얼마나 무서웠던지 숙소에 있는 친구놈보고 전화해서 마중 좀 나와 달라고 했다. 차마 귀신이 있다고는 말 할 수 없었고 다급한 목소리로 제발 나와 달라고만 했다. 친구새끼는 귀찮다고 안 나간다고 전화를 먼저 끊으려고 했다. 그때는 정말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면상에 주먹부터 꽂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한 번만 나와 달라고 사정사정하며 애원했다. 그제야 알겠다고는 했는데, 친구놈은 내가 숙소에 다 도착했을 때 문 밖으로 나오려다가 나를 보고는 다시 들어갔다. 그래 그게 어디냐. 

 

몇 년 전 맨 처음 송당리에 왔을 때 마을 카페 사장님께서 송당리는 제주도에서 귀신이 가장 많은 동네라고 했다. 처녀귀신 총각귀신 이런 거 말고 마고할멈 같은 지역 수호신들. 아무튼 동네 기운이 그렇다고 했다. 나는 영적인 건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건 도대체... 뭐였을까? 아직도 소름이 돋는다. 하기야 중학교 2학년 때 하늘을 날아다니는 초록색 형광덩어리 UFO도 봤었는데...(그때 같이 본 친구도 있음 진짜) 이 세상엔 귀신처럼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이 진짜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그날 밤 마침 숙소엔 우리 말고 아무도 없었기에 불 키고 잤다. (중간에 일어나서 다시 끔


(빨간색 점 찍어둔 저 자리었다. 왼쪽의 나뭇잎 때문에 상반신을 잘 볼 수 없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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