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26. 22:09ㆍ탐조/2011년
8월 24일 동네공원 (삼광조!)
(삼광조)
흰눈썹황금새 수컷의 아름다운 모습을 찍고자 아침 11시에 (나에겐 이른 아침) 공원에 갔다. 음 좀 더 일찍 올껄 그랬나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이런 조그만 산새들은 아침에 부지런하고 활발하여 눈에 잘 띈다.
일단 어제 발견했던 장소로 가서 흰눈썹황금새 수컷을 찾아봤다. 이상하게 암컷이나 이런 암컷 유조(?)는 눈에 잘 띄는데 수컷은 모습을 통 보여주지 않는다. 엄청 얄미운 녀석이다.
같은 녀석 .
일단 흰눈썹황금새를 찾기 위해서 솔부엉이를 먼저 찾아야했다. 흰눈썹황금새를 찾다가 솔부엉이가 있는 줄 모르고 막 움직이다가 놀래키면 미안하니 말이다.
이소한 솔부엉이 새끼와 어미는 항상 같이 앉아있고 찾기도 너무 쉽다.
그때 갑자기 솔부엉이 옆에서 왠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처음에는 딱새려니 무시했는데 아무래도 저 짙은 갈색! 푸른 머리!! 숨이 멎는듯 했다. 말도안돼! 설마 삼광조야!?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사진을 간신히 찍었다. 만약 저 녀석이 삼광조가 맞다면 이건 뉴스 특종감이다. 사실 삼광조라는 이름은 일본에서 붙여진 이름이고 최근에 긴꼬리딱새라는 이름이 새로 붙여졌다. 하지만 나는 긴꼬리딱새라는 이름보다는 삼광조라는 이름이 더 귀하고 사파이어 보석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든다. 긴꼬리딱새는 제주도 같이 남쪽지방 깊은 숲속에서 조그만 둥지를 틀고 3~4개의 알을 낳는 희귀조다. 최근에는 강원도 강릉에서도 번식이 확인되었다. 그만큼 날씨가 뜨거워지고 기후가 변했다는 뜻이다. 그런 녀석이 이런 작고 볼품없는 도심 속 공원을 왜 찾은 것일까 아무튼 이것은 대박중에 대박이였다.
사진을 찍는데 자꾸만 팔이 흔들리고 초점이 잘 안 맞춰진다. 이 녀석을 다른 보통 새와 똑같이 생각하고 찍으면 편할텐데 이 녀석이 귀하다는 생각과 대박중에 대박이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해 도저히 신중하게 행동할 수 없었다. 결국 중심을 잃고 어-? 어-? 휘청거리다가 근처 있던 나뭇가지들을 와지끈 바지끈 연속으로 밟으면서 딱 딱 부러지는 소리가 나서 그런지 긴꼬리딱새는 휙- 날아가 모습을 감추었다. 아쉬웠지만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 하고 이 사실을 함께 공유 했으면 하는 두 사람에게 급하게 문자를 보냈다. "지금 동네공원에서 긴꼬리딱새 발견!!" 한 분은 경향신문의 이재흥아저씨였고 다른 한 분은 고양환경운동연합의 박평수 위원장님께 보냈다. 이재흥 아저씨는 이변이 일어났다며 직접은 못 오고 사진기자들을 보내겠다고 했고 박평수위원장님 역시 대박이라며 기뻐하셨다. 1년 전부터 이 공원에 농약을 뿌리지 않도록 구청과 약속을 했는데 농약을 뿌리지 않자 솔부엉이, 조롱이, 긴꼬리딱새 등 희귀한 새들이 찾아온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예전에 이곳에 뿌린 농약양과 올해 뿌린 양을 비교해서 공원에 일어난 변화들을 그래프나 표로 만들어서 다른 공원들도 농약을 더 이상 뿌리지 않게 되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휙- 저쪽으로 날아갔다.
긴꼬리딱새가 날아가고 잠시 외면했던 솔부엉이를 쳐다봤다. 녀석은 나의 경솔했던 행동들을 무덤덤하게 쳐다만 보고 있었다. 아무리 새라지만 조금은 창피했다. 이소한 솔부엉이 새끼는 낮에는 항상 어미 곁에 앉아있다. 녀석은 어느새 훌쩍 커버려서 외관상으로는 어미와 구분하기 힘들정도로 자라버렸지만 행동은 여전히 어린티를 내어 어미와 새끼의 구분이 가능했다. 항상 사람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 어미고 그 옆에 앉아 여유롭게 털을 긁거나 꾸벅 꾸벅 졸고 있는 것이 새끼다. 모든 어머니는 강하다지만 야행성인 솔부엉이 어미도 낮잠을 자야 밤에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있을텐데 새끼를 위해 주변의 천적들을 항상 경계하고 있으니 도대체 언제 잠을 잘려나 싶다. 지금은 나 때문에 어미가 잠에 못 들고 있으니 날아간 긴꼬리딱새를 찾으러 조용히 자리를 피해주었다.
긴꼬리딱새를 찾으러 공원 길따라 걷고 있는데 선생님을 따르며 자연을 보는 아이들을 만났다. 그곳 선생님이 "새 사진 찍으로 오셨나봐요?" 라며 인사를 했다. 아이들과 함께 새 보러 왔냐고 물어보니 풀들을 보러 왔다는데 한 아이의 손에는 풀을 보기 위한 용도가 아닌 쌍안경이 들려있었다. "저 오색딱따구리 봤어요!" 그 아이는 나에게 아주 기쁘다는 듯 자랑했다. "우와~ 좋겠다~" 아이들에게 솔부엉이라도 보여줄까 이 자리에서 솔부엉이를 찾으려하니 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갔다.
'하하 나도 오색딱따구리 같이 흔한 새만 봐도 하늘로 날아가버릴 정도로 좋아하던 때가 있었는데 긴꼬리딱새를 보여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아이들과 헤어지고 긴꼬리딱새를 찾으러 가는데 위잉~! 커다란 엔진 소리가 들린다. 공원 꼭대기에 '공무수행' 이라는 문구가 적힌 트럭이 서 있었는데 긴 호스가 연결되어 어떤 아저씨가 농약을 뿌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거야? 박평수 위원장님이 분명 1년 전부터 농약을 안 뿌리기로 했는데?!' 나는 바로 박평수 위원장님에게 연락을 했다. 위원장님은 그 사람에게 폰을 건네달라고 해서 약을 치시는 아저씨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어 휴대폰을 건네줬다. 그 아저씨는 전화를 안 받으려고 하다가 나중에는 받아서 위원장님과 통화를 마치고는 떨떠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 사람 누구냐고 나한테 따진다. '나는 고등학생이라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몰라요.' 라는 태도를 취하고 이 아저씨의 질문에 대답해줬다. 약을 치던 아저씨는 호스를 거두고 나에게 와선 카메라를 보여달라고 했다. 내가 약 뿌리는 사진이라도 찍었을까봐 확인하는 것이다. 휴~ 다행이다. 평소 같았으면 이런 건 미리미리 찍어놨을텐데 통화하느라 찍지 않은 것이 행운이 되었다. 그 아저씨는 사진이 안 찍혔다는 걸 확인하고 여기 중국에서 날아온 주홍날개꽃매미들이 나무의 수액을 빨아먹고 배설물로 그을음병을 유발하기에 뿌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무리 새도 중요하지만 이 중국매미들이 나무들을 다 헤치면 새들도 사라지잖아 아 나무가 없으면 새들이 어떻게 살아갈꺼야? 그러면 안되는거야" 라며 나를 가르쳤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약에 직접적으로 맞은 매미를 보니 멀쩡히 잘만 날아간다. 약에 대해 내성만 생긴 것이다. 효과가 있긴 있나싶다. 그 아저씨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더니 트럭을 타고 가버렸다.
청딱따구리 ... 땅에 엎드려서 뭐하니?
박새
뭐..솔딱새나 쇠솔딱새겠지..
오색딱따구리
한참 지나서 다시 삼광조를 겨우겨우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매정하게 나를 보자마자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진짜..이 녀석 만나기 쉽지않다. 박새, 오목눈이, 흰눈썹황금새들과 어울려다니며 끊임없이 이 숲 저 숲 움직이고 다니니 사진을 찍기도 힘들뿐더러 발견하기 조차 힘들다. 공원의 울창한 숲들은 모두 세구역으로 나뉘어있는데 계속 번갈아가며 아무리 찾아봐도 긴꼬리딱새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이 녀석들이 공원 안에 있는게 아니라 밖에 있는건가 싶어 공원 한 바퀴를 삥~ 돌아보았지만 역시 보이지 않았다. 대신 긴꼬리딱새가 번식을 할지도 모를 장소는 발견했다. 녀석들은 어둡고 가려져 있는 공간을 좋아하는데 이곳도 칡덩쿨로 뒤덮이고 풀숲이 빽빽하게 나서 안 쪽 공간이 거의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주변에는 둥지 재료인 이끼가 많았다. 물론 내가 발견한 녀석은 어린새인데다가 한 마리 뿐이라 번식을 했을리는 없다. 그저 긴꼬리딱새의 번식 조건에 알맞은 장소를 보면서 나중엔 긴꼬리딱새가 이곳에서 번식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히 좋은것이다.
번호판도 찍어놨지만...일단 사진은 이렇게..
잠시 후, 경향신문의 사진기자와 박평수위원장님이 거의 동시에 도착하셨다. 위원장님과 기자들은 명함을 건네주고 인사하느라 바쁘다. 나도 어른되면 저런거 해야하나? 번거로운데.. 사진기자는 모두 2명이였는데 한 분은 평소에도 이재흥아저씨와 같이 새 사진을 찍으시던 분이라 대포 망원렌즈를 들고 계셨고 한 분은 새도 모르고 사진도 모르는 듯 한데 같이 오셨다. 그 사람이 나를 보자마자 급하게 일단 사진부터 보여달라고 했다. 빨리 확인하고 싶나보다. 왠지 기분이 떨떠름했지만 아까 흐릿하게나마 찍어놓은 긴꼬리딱새 사진을 보여주자 "진짜 있긴 있네?" 라는 반응이였다. 나는 긴꼬리딱새를 찾기 위해 일단 다 같이 숲속으로 들어갔다. 우선 나무 위에서 졸고 있는 솔부엉이를 보여줬다. 박평수 위원장님은 올해 1월달에 카메라를 택시 안에다가 그냥 두고 내린 이후로는 디지스코핑(필드스코프에 카메라를 갖다대어 찍는 것)으로 사진을 찍으신다. 카메라를 들고 계시는 사진기자 아저씨는 망원렌즈를 외발이로 고정하고 차라라라라칵~ 화려한 연사소리를 내며 사진을 찍으셨다.
나는 그 사이 긴꼬리딱새를 찾아서 보여드려고 했지만 아무리 계속 왔다갔다하며 나무 위를 샅샅이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는 다 같이 찾아봤지만 귀한 몸은 귀한 몸인지라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보이라는 긴꼬리딱새는 보이지 않고 자꾸 흰눈썹황금새와 시끄러운 직박구리 밖에 보이지 않았다. 기자분들은 대전을 가셔야하고 위원장님도 바쁜데도 불구하고 짬내서 오신건데 모습을 안 보이다니 참 얄밉다. 긴꼬리딱새처럼 생기지 않아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카메라로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흰머리오목눈이를 발견했다. 도감에는 흰머리오목눈이가 흔하지 않는 겨울철새라고 적혀있는데 여름에 관찰되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흰머리오목눈이는 집앞에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는 겨울이였지만 같은 녀석일꺼라고 생각한다. 공원을 찾는 흰눈썹황금새나 솔새 같이 작은 새들은 언제나 8월 중순 쯤에 우리집 창문 앞에 있는 가로수들을 통해 한칸 한칸 움직여 공원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이동경로다. 그러니 흰머리오목눈이도 다른 작은 산새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집 앞 가로수들을 거쳐 매년 공원으로 온 것일거다. 어쩌면 텃새로 자리 잡은 것일까? 긴꼬리딱새 찾다가 뜻하지 않게 또 다른 대박을 발견했다.
12시가 넘어가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경향신문 사진기자들은 결국 긴꼬리딱새를 보지 못 하고 돌아갔고 박평수위원장님과 나는 근처에 새로 생긴 국수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결국은 내가 불러놓고 나만 긴꼬리딱새를 본 셈이다. 예전엔 '도심속에 있는 이런 작은 공원에 무슨 새가 있겠어? 기껏해야 딱따구리들 정도..' 라고 생각하며 허구한 날 공릉천만 찾았다. '그래도..한번 쯤은 가볼까?' 하고 조금 관심을 가졌던 것이 이렇게 큰 결과를 낳을 줄은 몰랐다. 나는 엄청난 행운아인가보다. 이 조그만 동네공원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다. 굳이 멀리 가지 않고 근처에 관심을 가지고 새를 찾다보면 생각한 것 이상의 새들을 만날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산모기들은 정말 무섭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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