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7. 23:15ㆍ탐조/2013년
5월 4일 화성 황조롱이네 가족
어느 날,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창문 화단에 새가 알을 놓고 갔다는 이원우 아저씨의 글을 허심 아저씨가 공유한 덕분에 나도 보게 되었다.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 색 알. 황조롱이의 알이였다. 나는 댓글에 새의 이름과 알을 품고 있을 때 조심해야할 점 등 여러가지 참고해야할 사항들을 전해줬고 허심 아저씨의 친구인 이원우 아저씨는 자신의 집에 황조롱이가 둥지를 튼게 신기한 듯 매일매일 황조롱이 소식을 올려줬다. 처음엔 알이 두개였다가 네개로 늘어나고 여섯개로 늘어났다. 그 후 첫째가 태어나고 둘째가 태어나고... 마지막으로 여섯째인 막내도 무사히 태어났다. 이 집이 경기도 수원이라고 해서 내 집과는 너무 먼 탓에 처음에는 안 가려고 했지만. 도심 속에 있는 황조롱이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는 흔히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서 마지막 알이 부화했다는 소식을 보자마자 가서 관찰하기로 결심했고 이원우 아저씨와 나와는 전혀 친분이 없지만 관계를 보면 내 친구의 아빠의 친구이니 일단 페이스북으로 쪽지를 보냈다. 다행히도 허심 아저씨가 페이스북에서 내 얘기를 많이 언급해 나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다며 언제든지 오는 것을 허락해주셨다.
더 지체할 거 없이 시간이 나는데로 바로 출발을 하였다. 먼 길이지만 다행히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대중교통으로도 집 앞까지 찾아가는 길이 있었다. 대화역에서 버스를 타고 안양까지 가서 안양에서 다시 한번 더 버스를 갈아타면 도착인데 이 두 버스가 자주 오는 버스가 아니라 둘 다 50분 씩 기다렸고 또 가는 길이 멀다보니 둘 다 가는데 1시간 반 씩 걸렸다. 멀긴 멀다. 총 오가는데 3시간 반 씩 걸렸지만 가는동안 너무 지루해서 6시간 처럼 느껴졌다. 매일 이 코스로 운전하는 버스운전기사님께 존경심이 들 정도다.
이원우 아저씨는 도착한 날 반갑게 맞이해주셨고 나는 황조롱이 관찰을 허락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가져온 무화가 빵 케익을 드린 뒤 바로 창문에 있다는 화단을 살펴보았다. 에어컨 실외기 위에 올려져 있는 화단에는 우리를 빤히 쳐다보는 황조롱이 암컷과 데굴데굴 기어다니는 6마리의 황조롱이 아기들이 있었다. 진짜 이런 도심 속에, 사람들의 공간에 둥지를 틀었다는게 너무나 신기할 따름이였다. 무려 11층이나 되는 높은 이 곳에 왜 둥지를 틀게 되었을까? 그것도 아파트에. 일단 도심이지만 근처에 나름 풀 밭이나 경작지가 있으니 쥐도 많을 것이다. 새끼들을 굶길 걱정은 없다. 두 번째 이유는 안전에 있다고 생각한다. 높은 곳에 있으니 적어도 뱀 같이 알을 노리는 동물들이 오진 못 할 것이고 과감한 결정이지만 사람들이 있으니 까치나 까마귀 같은 녀석들도 함부로 못 올 것이다. 구렁이로부터 보호 받는 제비와 같은 이유가 아닐까? 그 다음 이유는 편리성에 있을 것 같다. 보통 황조롱이는 까치의 둥지를 빼앗아 쓰거나 빈둥지를 쓰는데 그런 나뭇가지로 이루어진 둥지보다 평평한 흙이 깔린 화단이 더 새끼를 끼우는데 더 편리한거 아닐까? 까치와 신경전을 벌일 필요도 없고 말이다. 근데 사실 화단 쪽은 지붕도 없이 없어서 비도 쫄딱 다 맞아야하고....까치둥지를 잘 살펴보지 못 해 비교는 못 하겠지만 이것저것 추측만 하고 있다.
그 간 황조롱이는 이 집 식구들과 익숙해져서 사람을 봐도 날아가진 않지만 낯선 나를 보고도 과연 안 날아갈까? 이 녀석이 사람을 구별할 줄 알까? 행여나 황조롱이가 새끼를 기르는데 방해가 될까봐 그 동안 창문을 자주 열지 않으셨다지만 오늘은 촬영을 위해서 창문을 아주 조심스럽게 열었다. 다행히도 황조롱이는 날아가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볼 뿐이였다. 황조롱이의 동그란 검은 눈동자는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부릅 뜨고 있었다. 날아가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익숙하니까 가까이서 사진을 찍어도 괜찮을 줄 알았다. 렌즈를 들이밀고 편안하게 사진을 찍어도 나를 무시해주고 새끼를 돌 볼 줄 알았는데 황조롱이 어미는 모든 행동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심지어 새끼에게 먹이를 먹일 때조차 내가 다가가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먹이를 먹이던 것도 중단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야생동물은 야생동물이였다. 이거 이래선 안 되겠다. 고작 사진을 찍겠다는 나로 인해 어미가 불안해고 새끼들이 굶게 된다면 안 될 일이기에 둥지 앞에다가 캠코더를 관찰 카메라로 설치해놓고 나는 안방에 들어가서 망원렌즈로 관찰했다. 혹시 몰라 망원렌즈도 가져오길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황조롱이는 어미는 처음 1분여간은 캠코더도 빤히 쳐다보았지만 금방 캠코더가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새끼들을 돌보는데 열중했다. 어미의 제일 큰 일은 그늘 만들어주기. 아파트 11층에 내리쬐는 햇빛은 새끼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온도인지 다들 그늘을 찾아서 기어다녔다. 보통 어미가 새끼들에게 밥을 먹일 때 강한 놈이 먹이를 가장 많이 받아먹고 약한 놈일 수록 적게 받아먹는데 여기서도 서열이 보인다. 제일 덩치가 큰 놈들은 온 몸이 가려지는 큰 그늘 아래에서 쓰러져 누워있는 상태로 쉬는데 덩치가 작은 녀석은 머리만 간신히 그늘 속에 넣고 온 몸은 햇빛에 노출 되어있는 상태로 어미를 기다린다. 어미는 간간히 날개를 펴줘서 그늘을 만들어주거나 품안에 새끼들을 품어주는데 역시 모두를 품어주진 못 한다. 계속해서 형들한테 밀리는 저 막내 녀석만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건 어떨까 생각해본다. 이야기의 좋은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수컷은 몇 십분 간격으로 먹이를 공급해준다. 이 날은 쥐와 장지뱀을 제일 많이 잡아왔다. 수컷이 멀리서 칠판 긁는 듯한 소리를 내면 암컷이 날아가 먹이를 받아오기도 하고 수컷이 직접 둥지까지 물어다주기도 한다. 암컷이 먹이를 새끼들에게 먹여줄 때는 꾹! 꾹! 소리를 낸다. 지빠귀들도 새끼들에게 먹이를 먹일 때는 이런 소리를 내던데... 맹금류인 황조롱이도 비슷한 소리를 낸다는게 흥미롭다. 어미의 꾹! 꾹! 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땅 바닥에 풀 죽은 듯 누워있던 새끼들이 번개같이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며 밥 달라고 어미에게 달려든다. 암컷은 먹이를 새끼들이 먹기 좋은 크기로 잘게 잘라준 후 직접 입으로 넣어주는데 여기서 덩치 큰 놈들이 먹이를 독차지하는 것이다. 작은 놈은 한 입도 못 먹는 경우도 많았다. 다음 번에 방문할 때는 닭날개를 사가지고 못 먹는 먹이를 챙겨주는게 어떨까 싶다. 자연에 인간이 개입하는게 맞는건지 경쟁에서 밀린 막내를 그래도 돌봐야하는게 맞는건지 혼란이 있겠지만 막내가 죽기 직전까지 간다면 나는 생명을 구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햇빛이 뜨거운 오전에는 어미가 둥지에서 새끼들에게 그늘도 만들어주고 잘 보살폈는데 오후가 되어 해가 아파트 뒷 쪽으로 가리자 둥지를 비우는 시간이 늘어났다.
둥지를 지키고 밥 먹이고.. 아무런 위협이나 문제 없이 평화롭게 새끼들을 키우고 있다. 동트는 아침이나 해지는 해질녘에 붉은 빛과 함께 촬영을 해보고 싶지만 집에 돌아가야하는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5시 정도에 떠나는 수 밖에 없었다.
감사하게도 아저씨께서 언제든지 와서 관찰해도 된다고 허락해주셨으니 앞으로 3일간의 간격을 두고 정지적으로 관찰할 계획이다.
오늘은 잘 몰라서 황조롱이를 당황하게 했지만 다음부터는 황조롱이 가족의 사생활을 방해하지 않고 관찰해낼 수 있겠다.
음.......그리고
계속 나이를 먹어가고 있고 사회적 책임을 져야할 때가 멀지 않았기에...
단순히 탐조를 하고 즐길 게 아니라 이 탐조를 한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활용을 할지... 고민을 하는 요즘이다.
바로 앞에서 보면 어미가 이렇게 쳐다본다.
어미가 만든 그늘 아래서 쉬고 있는 새끼.
어미가 새끼들을 잘 돌볼 수 있도록 관찰 카메라만 설치하고 빠졌다.
안녕? ㅎㅎㅎ
이때는 뭘 모르고 이렇게 가까이까지 가서 사진을 찍었다.. ..
먄. 다음부턴 이렇게 사진 찍는 일 없을꺼야.
새끼에게 잡아온 쥐를 뜯어먹여주는 어미.
가까이가서 쳐다보면 먹이주는 행동도 멈춰버리기 때문에 멀리가서 망원으로 찍었다.
이때는 망원렌즈로는 사진을 어디서 찍어야할지 몰라서... 거실에서 사진을 찍는 바람에 여러가지에 가렸다.
맛있게도 먹는다..
안방에서보니 훨씬 낫다.
가끔 씩 날 쳐다보기도 하지만.. 크게 움직이지만 않는다면 별 문제 없음!
잘 생겼네..
새끼는 모두 6마리.
어미가 나가있을 때는 이렇게 뭉쳐서 쉰다.
이렇게 뭉치니 꼭 덩치가 어미만큼의 큰 덩치로 보인다.
새끼들을 품는 어미. 그러나 모두를 품진 못 한다.
새끼를 돌보는 건 주로 암컷.
수컷은 이렇게 가끔 난간에 앉았다가 갈 뿐이다.
주로 먹이전달만 하고 가고 새끼를 직접적으로 돌보는 행동은 보지 못 했다.
먹이는 주로 장지뱀과 쥐.
....... 3일 간격으로 와서 자주자주 관찰해도 되겠냐고 묻자 감사하게도 흔쾌히 원우아저씨는 허락해주셨다.
평일에는 집이 비는데 도어락 번호를 알려줄테니 와서 관찰하라는....
그 정도면 정말 정말 정말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 황조롱이 관찰은 무조건 순조롭다..! 라고 생각했는데.. 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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