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를 만나기 위한 준비, 장비를 챙겨라

2016. 9. 4. 15:11낙서/가끔씩 끄적끄적


본문은 교육 웹진 <우물을 나온 개구리> 에도 게시된 글입니다. 


http://pajufreeschool.tistory.com/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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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넓은 들판 한 가운데에 서있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에 푸른 하늘의 날씨가 끝내준다. 탐조하기에 더 없이 좋은 날이다. 갈대 밭에는 부스럭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작은 새들이 보이고 구불구불 흐르는 강물 주변으로는 꽉꽉 울어대는 물새들도 보인다. 멀어서 무슨 새인지는 잘 모르겠고 형태만 어렴풋이 보인다. 당신은 무슨 새인지 궁금한 마음에 새들에게 다가간다. 음? 갑자기 새들이 하던 행동들을 멈추고 목을 빳빳이 세우기 시작한다. 


이런 망할, 와르르 다 날아가버린다.

 




날아오르는 새들

 

새들이 사람을 보고 도망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포식자고 새들은 피식자다. 사람에 비해 몇 배나 눈이 좋아서 수십 미터 밖에서도 천적의 접근을 눈치챌 수 있다. 우리가 접근을 하면 새들 입장에서는 무서운 영장류로부터 죽어라 도망가는 셈이니 체력소모도 심할뿐더러 스트레스도 받는다. 우리 입장에서도 제대로 관찰 할 수가 없으니 좋을 게 없다. 새들을 방해하지도 않으면서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



물론 있다. 간단한 몇 가지 준비물만 챙긴다면.

 



쌍안경


쌍안경은 초보에서 전문가까지 탐조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용하는 기본 중에 기본인 아이템이다. 작고 간편해서 휴대성이 좋다. 언제 어디서든 들고 다닐 수 있다.


쌍안경을 사용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맨 눈으로 보면 풍경, 쌍안경으로는 보면 그 속에 살아가는 생명들이 보인다. 풀 숲을 오가는 붉은머리오목눈이들의 조잘거림이 보일 것이고 나뭇가지에 앉아 졸고 있는 올빼미가 눈에 들어올 지도 모른다. 새들을 찾는데 쌍안경만큼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 배율이 아주 높지는 않아서 예민한 물새들은 힘들지라도 작고 귀여운 산새들을 자세히 관찰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탐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당장 장바구니에 쌍안경부터 담아라. 이전엔 보지 못 했던 자연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쌍안경의 모습  @succo

  

필드스코프


이 크고 아름다운 장비는 먼 거리에 있는 새들까지도 생생하게 보여주는 마법 같은 장비다. 새들이 수 십 미터 밖에 떨어져 있더라도 필드스코프만 있으면 문제 끝. 쌍안경이 새를 찾는 용도라면 필드스코프로는 깃털의 작은 반점들까지도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게 해준다. 그냥 커피와 티오피 정도의 차이가 난다고나 할까. 새를 먹는 것 이상으로 여기지 않던 사람이라도 필드스코프로 새를 보는 순간 이 생명체들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새들을 동정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새들에 대해 조금만 공부해보면 알겠지만 생긴 게 정말 비슷비슷해서 도대체 이 새와 저 새의 다른 점이 무엇인지 감도 안 잡힐 때가 있다. 그럴 때 일수록 필요한 것이 자세한 관찰과 기록인데 필드스코프가 이것을 도와준다. 그래서 특히 겁 많고 예민한 물새들을 탐조할 때 반드시 챙겨야 할 필수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필드스코프들은 크고 무거워서 사용하려면 이를 단단히 고정시켜줄 삼각대가 항상 필요하다. 때문에 삼각대와 필드스코프 이 두 장비를 들고 산과 들판을 다니다 보면 육체가 금방 피로해진다는 단점이 있다. 탐조한 다음 날이면 어깨가 비명을 지른다. 그래도… 근육이 성장하고 건강이 좋아지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크고 아름다운 장비, 필드스코프




필드스코프를 통해 본 되지빠귀 수컷 @서해민



도감


처음 새를 보기 시작할 때, 이 새의 이름은 무어인지, 저 새와는 어떤 점이 다른지, 저 행동과 울음소리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안타깝게도 새들의 가슴팍에 이름표가 달린 것도 아니고 백설공주처럼 이름이 뭐냐고 새에게 물어볼 수 도 없다. 궁금한 마음에 진짜로 대화를 시도하면 모자란 사람으로 보일 수 있으니 그럴 땐 도감을 사자. 도감은 새에 대한 많은 정보들이 이해하기 쉽게 담겨있다.  

 

특정 제품을 광고하는 거 같아서 망설여지지만.. 처음 탐조를 시작하는 분들에게는 LG 상록재단의 <한국의 새>를 매우 추천한다. 다른 훌륭한 도감도 많지만 이 도감은 작고 가벼워서 야외에서도 들고 다니기 편하며 새들에 대한 알찬 설명과 함께 세밀화로 구성되어 있어 각 새들에 대한 특징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000년에 발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2014년에 새로 개정판이 나왔다. 거의 국민도감 수준이다. 책만큼 자세하진 않지만 App으로도 제작되어서 휴대폰으로도 새들을 공부할 수 있다.


다만 매체의 특성상 한 지면 안에 새들의 모든 특징을 담아낸다는 건 어떤 도감이든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요류, 갈매기류, 솔새류처럼 전문가들도 동정하기 힘든 새들을 공부하려면 여러 도감을 구비하는 것이 좋다. (사실 구글이 제일 좋음)



 

 

크게 이 세 가지만 있으면 탐조할 준비는 끝난 것이다. 나머지는 일반적인 야외활동 준비랑 같다. 춥거나 덥지 않게 적당히 옷을 입고 걷기 편한 운동화까지 신었다면 이제 쌍안경과 도감을 들고 탐조를 하러 떠나보자. 우리의 소중한 피부를 위해 썬크림도 잊지말고. 


2016.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