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23. 11:11ㆍ탐조/2014년
1월 17일 출판단지 유수지
안개가 자욱하던 아침.
기러기들이 깨기 전에 오려고 아침 일찍 움직였는데 카메라 CF카드를 두고왔다.
크게 아쉽진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새들이 있는 풍경을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출근 또는 등교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던 예전과는 다른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보이던 아우디a6가 오늘도 왔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오늘도 자고 있던 새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사진을 찍는다.
곤히 쉬고 있던 새들에게 자신이 왔음을 굳이 알리고 싶은 건지 바짝 바짝 걸어가는데 새들이 반가워 할리가 있나.
그렇게 새들을 날려준 덕분에 반대편에 서있던 나는 휴대폰으로도 날아가는 기러기들을 담을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새들을 보실거면 따듯한 옷 아무거나 입고 오시지, 뭐하러 위장색 군복을 입고 왔는지.
새들의 휴식도 방해하고 고요했던 나의 아침도 망쳐버렸다.
이런 상황이 연속으로 반복되니 오늘은 그냥 갈 수 없고 뭐라도 말을 드리고 가야겠다 싶어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내가 어떤 사람이든 간에 그 사람을 제제하거나 말릴 자격이 없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고 잘 알고 있기에 살살 정중하게 부탁을 드렸다.
-사진 찍는건 좋은 취미지만 새들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금만 배려해서 약간만 뒤로 가서 찍어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알겠어 알겠다고 알겠다고 했잖아
새들을 날리면서 까지 촬영하는 건 자제해 주기 바란다고, 굽신굽신 부탁을 해야 하는 이런 상황은 자주 겪어봤다. 그렇지만 매번 말을 걸 때마다 떨리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진가분들은 나이가 많으신 어른들이 대부분이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여태 까지 만난 본 사람들은 전부 '너가 뭔데' 라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이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말하면 좁 곱게 알아들으실까. 어떻게 말해야 서로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다가갈 때면 가슴 속이 떨린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가까이서 보니 역시 나이 지긋한 어르신.
카메라 장비들이 워낙 고가이다 보니 아니면 요즘 십대들은 밖으로 쏘다닐 여유가 없어서 인지 새 사진 찍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르신들이다.
내가 하는 말은 끝까지 듣지도 않고 도중에 짤라 먹는, 나이를 똥구녕으로 잡수신 이 어르신은 역시나 뭐 하는 사람인데 훈계냐고 되려 내게 따졌다.
미국에서 새를 관찰할 적엔 위장텐트를 새들의 휴식처로부터 너무 가까이 설치하면 새들 휴식을 방해한다며 마을 주민분에게 혼나기도 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분들은 좋게 얘기해도 되려 자기가 당당하게 목소리 올려 얘기하는 이 웃기는 상황.
훈계가 아니고 부탁이라 하니 알겠다며 등 돌리고 간다.
아 앞으로 아침 일찍 매일 나가야 하는 이유가 생긴 듯하다.
사진사 어르신분은 새들을 조금만 더 배려할 수 있는 여유가 아직 없으신 거겠지.
이런 분들 만날 때마다 난 꼭 곱게 늙어야지 라는 생각부터 든다.
이제 올 때 마다 인사 드려야겠다. 영.감.님
-----
이런 사진가들의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올바른 탐조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선 어떤 단계들이 필요할까.
첫째는 그들 스스로 개선하는 것이고
둘째는 펜스를 치고 탐조대를 설치해서 사진가들이 새들을 방해하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 해주는 것.
그러나 모든 철새도래지에 그럴 수 있는 노릇도 아니고.
결국엔 또 교육 문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탐조 > 2014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1월 19일 출판단지 유수지, 시화호 (흰기러기, 흰꼬리수리 등) (0) | 2014.01.23 |
---|---|
1월 18일 출판단지 유수지, 집 앞 먹이통 (기러기, 오목눈이) (0) | 2014.01.23 |
1월 16일 먹이통 (0) | 2014.01.23 |
1월 15일 출판단지 유수지 (기러기, 노랑부리저어새) (0) | 2014.01.18 |
1월 13일 집 앞 버드피더 (0) | 2014.01.16 |